숭고함에서 비겁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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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017년11월25일 조회1,3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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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함에서 비겁함까지
어느 대학교수가 “숭고함에서 비겁함까지”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다.
“두어 주 전에 연구실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것이었다. 자기 자녀의 장학금 문제라고 했다. 학교 행정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서 일단 사과를 드렸다. 그런데 내가 장학담당관도
아니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전화였다. 그렇지만 ‘도와 드릴 테니 학생의 소속과 이름을 말해 달라’고
했다. 완강히 거부하셨다. 나는 굴하지 않고 계속 이름을 요구했다.
계속 거부하셨지만 내가 더 집요했다. 이름을 모르고는 아무런 도움도
드릴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결국 무슨 과, 누구라는 말을 들었다.”
“그 다음부터 그분의 목소리 톤이 완전히 달라졌다. 부드럽다는 말로 부족한
, 일어서서 코가 땅에 닿도록 절하며 말씀하시는 상황이 눈에 그려지는
목소리였다. 자녀를 위해서 전화하셨다가 자녀의 소속과 이름을 밝히게
된 후에는 혹 자녀에게 누가 되거나 손해가 될까봐 ‘자기를 죽이고’
공손해지신 아버지의 모습에 어떤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이 조금 전에는 그렇게 무례할 수 있었을까,
도저히 상상이 안 갈 정도였다.”
이 교수는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 “우리 인간들 대부분의 모습이 이럴 거다.
말도 안 되는 무례한 억지, 숭고하기까지 한 순수함, 익명성 뒤에 숨는 비겁함 ...
한 인간 속에 있는 천 가지, 만 가지 모습 중 일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들의 민낯이 그대로 들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어떤 사건이나 어떤 사람에 대해
SNS상이나 인터넷에 악플(악성댓글)을 다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익명성 때문에 마음 놓고
공격을 하고 비난도 하고 심한 욕설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실명제를 도입하자고 하지만 실행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심한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밝히라고 하고 당사자와
얼굴을 맞대고 말하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이익이 걸린
일에서나 힘을 가진 사람 앞에서도 그렇게 무례할 수 있을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익명성 뒤에 숨어서 그런 악플을 달고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가장 비겁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이고 우리들의 인격의 현주소이다.
“숭고함에서 비겁함까지.” 우리 모두는 이런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숨어서는 어떤 심한 말이라도 하고, 숨어서는 어떤 악한 행동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다가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이거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면
한없이 비굴해지는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위선과 이중성이
우리의 민낯이다. 어떻게 이런 부끄럽고 비참하고 불쌍한 이중성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위선에서 벗어나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진실하고 솔직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식의 소속과 이름을 밝히기 전에는 한없이 무례하다가 밝히고 난 후에는
정반대로 한없이 낮아지고 공손해지고 겸손해진 그 아버지처럼 상대방이 나 자신이고,
내 자식이고,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고 내 말을 듣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행동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고 일하는 것을 기억한다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럴 때 “숭고함에서 비겁함까지”
다 가지고 있는 이중성과 위선을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코람 데오(CORAM DEO).”
< 이 희 수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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