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 집 개가 죽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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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023년09월02일 조회85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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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 집 개가 죽으면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룰 정도로 까맣게 몰려들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정승(政丞)’은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으로 요즘의
국무총리나 장관 같은 고위층 인물이다. 이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무엇을 얻을까,
무슨 유익을 얻을까 하는 생각에서 잘 보이려고 정승이 기르는 개가 죽었을 때도 수없이 찾아와서 문상하는데,
정작 정승이 죽으면 더 이상 얻을 것이 없기에 아무도 문상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얻을 것이 없으면 매몰차게 얼굴을 바꾸고 돌아서는 것이 현실이다.
매일성경 9월 1일 묵상본문은 열왕기상 1장 1절-10절이다. 내용은 다윗이 나이가 많아 늙어서 약해졌는데,
아들 아도니야가 사람들을 모아서 스스로 왕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그는 잘 생겼고 아버지 다윗에게 한 번도
책망받은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고 효자였다. 그런 그가 아버지가 나이가 많아 늙어서 약해지자
그 기회를 타서 왕위를 차지하려고 한 것이다.
나단 선지자가 이를 알고 밧세바에게 말하고 밧세바가 다윗에게 말해서 즉시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아도니야가 이를 알고 놀라서 성전 제단에 숨었는데 솔로몬이 그를 살려주었다. 나중에 그는 다윗이 늙었을 때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품었던 처녀 아비삭을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청했다가 죽임을 당했고,
그를 따랐던 요압도 죽임당하고 제사장 아비아달은 쫓겨났다.
아도니야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는 겉으로는 성실하고 효자였지만 그의 마음 속에 왕위를 탐내는
욕심을 숨기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아버지 다윗이 약해진 틈을 타서 왕위를 차지하려 한 것이다. 이때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도 그의 유혹에 넘어가서 평생 모시던 다윗 왕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거슬렀다가
실패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심리는 변하지 않고 똑같다. 모두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힘 있는 사람에게 들러붙어 있다가 그가 힘이 약해지면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매몰차게 돌아서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자기 유익을 위해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을 ‘철새 정치인’이라고 비난한다.
자기가 잘나가기 위해서 어릴 적 친구도, 선배도 심지어 가족까지도 이용하고 배신하고 돌아서고 맞서서 싸우는 것을
수없이 본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 없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방법으로 살고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자기 유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다.
힘이 있고 자기가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 바짝 달라붙어서 존경한다고 하고 충성하고 따르다가,
그가 힘이 약해지고 자기가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대하고 함부로 말하고 바로 돌아서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삶의 모습일까? 우리의 삶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내 생각과 욕심과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이다.
다른 사람은 내가 이용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게 당장의 유익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얼굴을 바꾸고
돌아서는 사람들을 볼 때 놀라게 되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그들은 매우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는다면 그렇게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믿고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다”라는 말이 있다.
피조물인 인간은 연약하고 부족한 유한한 존재이기에 믿을 만한 존재가 못 된다. 우리 모두 유한한 존재이기에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유한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대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 이 희 수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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